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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공부는 왜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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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21회 작성일 21-03-06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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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공부는 왜 하는가?


불교공부는 강을 건너는 뗏목과 같다.


불교공부는 왜 하는가? 에 대한 설명은 곧 불교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해명이 됩니다. 요즈음 행해지는 불교공부는 흔히 강좌, 강의 등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그냥 설법, 법문이라고 불렀습니다. 법문에는 대참(大參)법문과 소참(小參)법문이 있습니다.


또 상당(上堂)법문, 조참(朝參)법문, 만참(晩參)법문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대참법문은 많은 대중을 모아 놓고 선지식이나 지도자 혹은 주지스님이 대중들에게 불교에 대하여 상당히 깊은 안목을 가진 선지식, 즉 조실스님이나 방장스님이 그야말로 불교의 진수를 드러내는 법문형식을 말합니다.


여기서 참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우선 선종(禪宗)에서는 주지가 대중을 모아 놓고 불교를 설하는 것을 참이라고 말합니다. 또 종장(宗丈)이나 선지식을 뵙고 불교에 대해 묻는 일도 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매월 정기적인 법회를 대참법문이라 하고 비정기적으로 법을 설하는 것을 소참법문이라고 합니다.


또 불교공부를 하는 일은 부처님의 서원을 따르는 일입니다. 부처님의 서원은 깨달음의 이치를 어리석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불교공부는 훌륭하고 바른 삶의 이치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진정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부처님의 서원인 것입니다. 금강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래가 법을 설한 것이 있다고 하면 곧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부처님께서 많은 말씀을 하셨고 그 말씀을 통해서 불교적 인생을 살아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불교를 가르친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여래를 비방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여러 각도에서 해석이 가능합니다.


우선 앞에서 말한 뗏목의 비유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설법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거기에 매이고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더 역설적으로 말해서 부처님의 법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부처님의 진정한 뜻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가르침에 매이는 것은 부처님의 참 뜻을 모를 뿐 아니라 오히려 부처님의 가르침을 편협된 가르침으로 규정짓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금강경)의 말씀은 이와 같이 매우 역설적인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다른 종교의 가르침과 비교해 볼 때 참으로 기상천외한 것입니다. 부처님게서는 오랜 고행 끝에 얻은 깨달음의 가르침에조차 집착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물줄기와도 같은 가르침입니다.


불교적 의미에서 공부란 지식을 연마하고 몰랐던 사실을 아는 것에 목적을 두는 일반적인 의미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불교공부에 대해 (금강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설법을 뗏목의 비유와 같이 알라.


뗏목이란 오로지 강을 건널 때만 필요한 도구입니다. 강을 건너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해서 강을 건너고 나서도 무거운 뗏목을 짊어지고 목적지까지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불교의 어떤 중요한 가르침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강을 건너는 뗏목의 역할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불교를 제대로 공부하는 올바른 태도입니다.


불교공부가 우리의 마음에 위안을 주고 몰랐던 것을 일깨워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방편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삶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게 바람직합니다.